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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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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

함열(咸悅)은 전라북도(全羅北道) 익산군(益山郡)에 속해있는 지명(地名)으로 일찌기 백제(百濟) 시대에 감물아현(甘勿阿縣)[감무나.함라] 이라 불리우다가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함열(咸悅)로 고쳐서 임피군(臨陂郡 : 지금의 옥구군 임피면)에 속하게 하였으며,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이웃 용안(龍安)과 합하여 안열현(安悅縣)으로 고쳤고, 뒤에 다시 함열(咸悅)로 고쳤으나, 1914년 익산군(益山郡)에 병합되어 함라면(咸羅面)이 되었다.
(현재는 행정 지명이 익산시 함열읍이며, 남궁씨를 포함한 기자조선 준왕세력이 위만조선에 패할 때 바닷길로 마한지역으로 남하하여 마한 목지국을 세우고 맹주로 마한을 경영했으며 목지국은 지금의 당진-홍성-익산 등지로 비정 되므로 BC194년경부터 감무나 지역에 정착 했을 수 있음)

남궁씨(南宮氏)는 고대 은(상)나라를 뒤이은 주(周)나라 건국(BC1046년)時 기자(箕子)와 함께 동래(東來)한 남궁 수(南宮 脩)의 후예로 전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남궁씨의 시조(始祖)는 기록이 남아있는 고려 성종(成宗) 때의 대장군(大將軍) 남궁원청(南宮元淸)이다. 그는 본래 감물아현(甘勿阿縣) 출신으로 김행성(金行成) 등과 함께 송(宋) 나라에 유학하여 국자감(國子監)에서 공부하고 대과(大科)에 급제했다. 귀국 후 991년(성종10)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여진적(女眞賊)[북방 약탈 야인]을 백두산(白頭山) 북방까지 몰아내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로 감물아백(甘勿阿伯)[백작:공후백자남]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함열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가문(家門)의 대표적인 인맥(人脈)을 살펴보면 득희(得禧)의 아들 신(信)이 고려조에서 호군(護軍)으로 충혜왕(忠惠王)의 총애를 받았으며 조적의 난(亂)을 평정(平定)하는 데 공(功)을 세워 벽상일등공신(壁上一等功臣)에 올랐고, 판도판서(版圖判書) 경(璟)의 아들 민(敏)은 충숙왕(忠肅王) 때 문과(文科)에 장원하여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 을 지내고 충목왕(忠穆王) 때는 정치관(整治官)이 되어 왕(王)에게 학문(學問)을 강론했다. 조선조에 와서는 소윤(少尹) 우(祐)의 아들 계(啓)가 태종(太宗) 때 좌명원종공신(佐命原從功臣)에 책록되어 대호군(大護軍)에 올랐으며 세종조(世宗朝)에 정주 목사(定州牧使)와 판의주목사(判義州牧使)를 거쳐 사은사(謝恩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와서 한성부윤(漢城府尹)·전라도 도절제사(全羅道都節制使)를 지내고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에 이르렀다. 특히 왕(王)의 시강관(侍講官)으로 문명(文名)을 떨쳤던 찬(璨)은 군수(郡守) 치(致)의 손자(孫子)로 가문을 중흥시킨 인물(人物)이다. 1489년(성종 20) 문과(文科)에 급제한 그는 한림원(翰林院)의 여러 벼슬을 거쳐 부제학(副提學)에 올랐으며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로 나갔다가 연산군(燕山君)의 난정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그 후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화(禍)를 입은 김종직(金宗直)을 비롯한 제현(諸賢)들의 억울함을 신구(伸救)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용안(龍安)에 유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당시 그의 문명(文名)이 중국(中國)에까지 알려지자 명(明)나라에서는 그의 묘소에 세워질 인문석(人文石 : 묘소에 세운 문관 형태의 석물)[文石人]을 하사했는데 배로 옮기던 도중 태풍을 만나 바닷속에 잠겨 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신통하게도 인문석이 서해안 바닷가에 떠올라 전북(全北) 익산군(益山郡) 성당면(聖堂面) 갈산리(葛山里)에 있는 그의 무덤 앞에 세워졌다고 한다. 찬(璨)은 슬하에 필(弼:현감)·익(翼:현령)·숙(淑:지중추부사)·열(說:습독) 4 형제를 두었는데 이들 모두가 관직을 역임하여 가맥(家脈)을 계승하여 가문의 융성을 이루었다. 1540년(중종 35)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한 침은 익(翼)의 아들로 춘추관 (春秋館)의 기사관(記事官)이 되어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했으며 명종조(明宗朝)에는 암행어사(暗行御史)로 경상도(慶尙道)를 안무했다. 한편 판윤(判尹) 숙(淑)의 맏아들 제(悌)는 선조(宣祖) 때 등과하여 평강 현령(平康縣令)·진잠 현감 (鎭岑縣監)·의령 어사(宜寧御史) 등의 외직을 거치면서 많은 치적(治績)을 쌓아 왕(王)으로부터 〈거관근검부역평균(居官勤儉賦役平均)〉이라는 여덟 글자를 하사(下賜)받았다. 그외 광해군(光海君) 때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고 인조조(仁祖朝)에 서흥 군수(瑞興郡守)를 역임한 경과 곡산 군수(谷山郡守) 집(鏶)이 유명했고 관찰사(觀察使) 율의 아들 옥(鈺)은 문장(文章)과 글씨로 명성을 떨쳤으며 일곱 차례나 군현(郡縣)을 다스리는 동안 청백(淸白)하기로 유명했다. 명경(明經)과 효행(孝行)으로 팔도에 이름났던 제는 여러 차례 관직에 추천되었으나 모두 사양한 후 일생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했고, 1671년(현종 12)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는 병자호란(丙子胡亂) 후 청(淸) 태종(太宗) 홍타이지가 조선 인조의 항복을 받고 자기의 공덕을 자랑하는 비(碑)를 자신의 고향인 삼전도(三田渡 : 지금의 서울 강동구 송파동)에 세우자 그 곳이 더럽다고 하여 105결(百五結 : 약 30 만 평)이나 되는 토지를 버리고 문서까지 불태운 후 깊은 산골로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고 하며 한말(韓末)에 와서는 천재시인으로 명성을 떨쳤던 벽(璧)과 무궁화 역사사건으로 유명한 억이 가문(家門)을 더욱 빛냈다.
또한 허균의 한자소설 남궁선생전 주인공인 실존 도사 남궁두 선생 역시 역사의 인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제헌국회의원 남궁현, 국회의원.정보통신부장관.삼성전자사장 남궁석, 국회의원.문화관광부장관 남궁진, 대한조선공사 사장 남궁련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학자, 사업가, 예체능인, 공무원, 예술가, 정치인 등 많은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경제기획원 2015년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함열 남궁씨(咸悅南宮氏)는 남한(南韓)에만 20,715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남한 인구의 0.04%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2500명당 1명인 비율인데, 조선조 문과 급제자 총 15,000여 명 중 남궁씨가 15명의 급제자를 배출했으니 인구비례로 0.1%에 해당하는 엄청난 가문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문과 15명, 무과 9명, 생원시 25명, 진사시 28명, 음관 24명 등)
또한 남궁씨는 성이 두자라는 것을 핑계로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인 대부분이 참여한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며, (당시 중국이 아닌) 고대 동방에는 부여온조, 뇌질주일(고령가야), 뇌질청예(금관가야), 흑치상지, 을지문덕, 연개소문, 걸걸중상, 걸사비우, 남궁장만(당), 남궁원청(고려), 야율아보기(금), 풍신수길, 덕천가강, 이등박문, 누루하치(후금), 홍타이지(청), 남궁일주(대한민국) 등 본디 네 자의 이름이 특징이었던바 남궁씨를 중국 성씨라기보다는 고대 동방성씨라 해야 옳을 것이다. 이는 중국의 남궁씨 본관인 하북성 南宮市(인구 약 40만) 자체가 산동성 인근이라 화하족이 퍼지기 전까지는 고인돌이 발견되는 동방족의 강역 이라고 볼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의 성씨는 고주몽, 부여온조,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진한 6부촌장(李鄭孫崔裵薛) 등 왕족 및 귀족에게서만 멀리 2000년 전부터 가깝게는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사성된 충신.호족 성씨가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주나라 건국 공신 남궁괄을 최초기록으로 3100년이 넘는 남궁씨는 가히 그 어느 성씨도 비교할 수 없는 곰과 환웅 전설의 단군조선 시대의 신화적 성씨인 것이다. 또한 2500여 년 전 공자의 제자이자 조카사위인 동명2인 남궁괄(남궁경숙,남궁자: 산동성 곡부 공자묘 배향)의 기록 등 남궁씨는 기나긴 동방의 역사에 늘 존재해왔고 앞으로 더욱 장구하게 이어가야 할 성씨라 하겠다.

* 姓은 출생 계통, 氏는 본관 등 출신지역을 뜻하므로 우리의 성은 南宮, 관향 씨는 咸悅이 되므로 대한민국 남궁씨 대부분은 함열 남궁씨 인 것이며 세계적으로는 함열남궁씨 말고도 다른 남궁씨가 있을 수 있음.

남궁일주 편역. 
(남궁씨 장학회 감사)
2019.08.05.  allco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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