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재(永慕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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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재는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의 16세손인 호은(壺隱) 남궁찬(璨)을 불망영모하기 위한 재실이다.
함열남궁씨의 족보에서는 남궁찬(璨)을 중시조로 받들고 평산신씨(平山申氏)와의 사이에서 출생한 4남을 4파조 [고창공 필(弼)·현령공 익(翼)·판윤공 숙(淑)·습독공 열(說)]로 삼고 다시 자손이 번성하므로 7손을 7파조로 삼아 계대를 등재하고 있다.
남궁찬은 왕의 시강관(侍講官)으로 문명을 떨쳤는데 치(致)의 손자이다. 1489년(성종 20) 문과에 급제한 그는 한림원(翰林院)의 여러 벼슬을 거쳐 부제학에 올랐으며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연산군 때 난정을 개탄하고 벼슬을 버렸으며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제현들의 억울함을 간핵하였다가 전북 익산의 용안으로 유배되어 배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배길에 지은 묵죽(墨竹)과 묵매(墨梅)의 시서는 유명하다. 매년 음력 3월 14일에 후손들이 모여서 추모향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