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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 남궁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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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전문】- 남궁벽

풀 여름 풀
대대목(代代木) 들(野)의
이슬에 젖은 너를
지금 내가 맨발로 사뿐사뿐 밟는다.
애인(愛人)의 입술에 입맞추는 마음으로
참으로 너는 땅의 입술이 아니냐.

그러나 네가 이것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가 죽으면 흙이 되마
그래서 네 뿌리 밑에 가서
너를 북돋아 주마꾸나.

그래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네나 내나 우리는
불사(不死)의 둘레를 돌아다니는 중생(衆生)이다.
그 영원(永遠)의 역로(歷路)에서 닥드려 만날 때에
마치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될 때에
지금 내가 너를 사뿐 밟고 있는 것처럼
너도 나를 사뿐 밟아 주려므나.

            - [폐허] 2호(1920년 1월호) -

* 대대목(代代木; 요요기) : 일본(日本)동경(東京)의 지명(地名)

【해설】
  남궁벽의 자유시. 아무 가식이 없는 인성(人性)의 진면목이 천진난만한 동심적 경지를 느끼게 한다. 자연과 인간, 그것이 윤회(輪廻)의 경지에 들어가 절대 운명의 일체가 되어 있음을 본다.

  너무나도 깨끗하고 순진스러운 시인의 마음, 그것이 그대로 시가 되었다. 남궁벽 특유의 인도주의(人道主義)가 자연에 곱게 나래를 친 작품이다. 당시 변영로, 염상섭은 이 시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휴머니즘과 센티멘털리즘의 경향이 역연(歷然)함을 볼 수 있는 있지만, 이것은 군의 전인격에 허식과 과장이 없는 것과 같이 가장 순진하고 솔직한 내적 표현이라 생각한다.”
                                        (1922년 ‘신생활’ 7월호)

【주제】자연 친화의 감정
【내용 풀이】
▶제1연 : 계절은 여름, 배경은 ‘요요기 들’이다. 이슬에 젖은 풀을 나는 맨발로 밟는다. 마치 애인의 입술에 입맞추듯이 달콤하고 조심스럽게.
▶제2연 : 내가 이렇게 밟는 것을 풀아, 야속하다고 한다면 내가 죽어서 흙이 되어 네 뿌리를 북돋아 너의 힘이 되어 주겠다.
▶제3연 : 그래도 야속하다고 한다면 풀아, 우리의 영원한 삼생(三生)에서 우리가 만났을 때, 그때 너는 나를 밟아 달라. 우리는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중생이요, 형제이니 말이다.

【형식】
  대화체로 된 시다. 풀을 의인화하여,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고 풀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행과 연의 구분이 자연스럽고, 호흡도 활달하며, 언어도 쉬운 일상어를 구사하고 있다.

【기교】
  이 시는 전체적으로 점진적인 강조법을 쓰고 있다. 대화체에다 이와 같은 점진법을 씀으로써 더욱 호소력이 강하다. 제1연에서는 풀을 밟는 상태를 묘사하고, 다음 제2연에서는 좀더 깊은 관계를, 제3연에서는 풀과 사람이 완전 일체가 되는 상태로 몰입한다.

  이러한 점진법은 어느 시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으나, 이 시에서는 이 수법이 아주 적절하다. 그것은 대화체로 쓰여진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불교의 윤회사상이 바탕으로 되어 있어 더욱 심한 느낌을 준다. ‘참으로 너는 땅의 입술이 아니냐?’ 하는 구절에서도 이 시인의 자연에 대한 외경심과 애정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감상】
  수십 년이 전의 시편(詩篇)을 읽으면, 대개는 그 언어나 표현 방식에 매우 낡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시는 이처럼 앞을 다투어 변모해 가는 것인데, 이 시를 읽으면 조금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자연스런 언어와 보편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진 시이다.

  먼저 표현 수법부터 살펴보면, 자연 친화의 감정을 점층법을 사용하여 제1연보다 제 2연에서 더 깊게 하고, 제3연에 이르러서는 자연은 일체라는 감정으로 심화하여 간다. 마지막 연에 이르러 인간과 풀은 윤회의 경지에서 절대 운명의 일체가 되어 더할 수 없이 친밀하게 된다. 동양의 윤회설은 희랍의 원(圓)의 사상과도 일치되는 점이 있다. 시작과 종말이 있고, 창조와 피조(被造)가 있고, 시간의 순위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헤브라이즘의 사각형적(四角形的) 우주 관계와는 매우 대조적인 세계관이 윤회와 원(圓)의 사상일 것이다. 사각형의 사상에는 격차와 비교와 높음과 삶과 죽음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원의 사상에서는 삶과 죽음의, 인간과 잡초의 격차는 없다. 모두가 거대한 일환(一環)일 뿐이다. 막연하다면 막연하지만, 그 대신 거대하고, 무분별하다면 무분별하지만, 그 대신 친밀하다.

  이 시인의 다른 시 <별의 아픔>을 보면, ‘당신은 세상 사람들이 지상의 꽃을 비틀어 꺾을 때 천상의 별이 아파한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라는 표현이 있어 만물에는 같은 피가 통하여 흐른다는 일환일체(一環一體)의 우주관을 이 시인에게서 볼 수가 있다. 물론 이 시는 이러한 이 시인의 철학을 나타내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되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시인과 풀이 서로 피가 통하는 친화감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다정다감한 시를 쓰고 있다.

  제1연의 마지막 행 ‘참으로 너는 땅의 입술이 아니냐?’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얼마나 감미롭고 신선한 풀의 생명감을 느끼게 되며, 자연 친화의 감정을 만끽하게 되는가 !

  인간의 많은 편에 공감을 줄 수 있는 심오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시상(詩想)에 있어서나, 자연스러운 표현 기교면에 있어서나, 우리나라 현대시를 장식하는 초기 대표자의 유력한 한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김현승: <한국 현대시 해설>(지학사.1981)  -

  불설(佛說)에 의하면, 중생이 해탈하여 각해(覺海)에 들어가지 못하면,  영원히 윤회(輪廻)의 수레바퀴를 돈다고 한다. 이 윤회의 과정에서,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려면 8만 겁(劫)이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8만 겁 년 동안에 사람은 흙이 되었다, 풀이 되었다, 돌이 되었다, 나비가 되었다 하며, 환생을 거듭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상이 바로 이 시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풀을 밟으면서 시인은 자기가 언젠가는 죽어 흙이 되고, 풀이 될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지금의 내가 풀을 밟듯이 풀이 된 자기를 밟을 것을 생각한다.

  이러한 자연에의 친화감은 마음만의 그것이 아니다. 몸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일체가 되어, 영원한 윤회를 통해 얽혀있는 무한한 애정인 것이다. 자연관이나 사생관(死生觀)이 여기에 이르면 실로 선(禪)의 경지라 하겠다.

  낭만적이면서도 동양적 불교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는 이 시는, 그러나 의도적으로 이러한 사상을 주제로 삼은 것은 아니다. 사인의 일상생활이 이러한 사상으로 일관되고 있기 때문에 자연 발로의 형태로 서로 표현되었을 뿐인 것이다.

- 권웅: <한국의 명시 해설>(보성출판사.1990)  -

[출처] 남궁벽 : 시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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